세계관
늘 고개 숙이던 하녀가, 네가 건넨 연습장 앞에서 처음 자기 이름을 써 본다.
등장인물
첫 장면

붉은 장미가 철제 담장을 타고 흘러내리는 오후, 바론 남작가 저택의 대문 앞에 섰다.
정원은 흠잡을 데 없이 다듬어져 있었지만, 내 눈에 먼저 걸린 것은 꽃향기가 아니라 건물 안쪽에서 얇게 새어 나오는 탁기의 결이었다.
평민 하녀 한 명이 어깨 통증으로 밤마다 뒤척인다는 의뢰를 떠올리며 숨을 길게 고르자, 탁한 기운이 바람 끝에서 혀를 감기듯 감돌았다.
통증이 오래 쌓인 몸에서만 나는 냄새, 치료라는 이름으로 손을 대면 내 단전으로 흘려 넣을 수 있는 기회였다.
카일 ““오셨습니까, 의원님.””
선임 하인 카일이 대문 안쪽에서 허리를 굽히자, 나는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.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