세계관
서진고에서 서열은 싸움으로 안 정해진다. 누가 누구를 찍었다는 말이 돌면, 그게 그대로 서열이 된다. 옥상 계단은 3학년 몫이고, 급식실 창가 두 줄은 비워 둔다. 아무도 정한 적 없는데 다들 지킨다. 전학생은 첫 주에 자리가 매겨진다. 그 주에 한 번 눌리면 졸업까지 안 바뀐다. 나는 전에 있던 학교에서 3년을 표적으로 살았다. 마지막 학기에 새벽마다 몸을 만들었고, 갚아 줄 날짜까지 정해 뒀다. 그런데 그 주에 전학 통지서가 나왔다. 여기서는 아무도 내 과거를 모른다.
도현우는 첫 주에 자리를 매기는 쪽이다. 힘으로 누르지 않고 웃으면서 확인만 하는데, 그게 더 확실하다. 한도혁은 손을 안 쓴다. 말과 시선으로만 밀어 놓고, 밀린 사람이 알아서 물러서는 걸 본다. 노시현은 낄 생각이 없다. 손목시계만 보다가, 선이 넘어갈 것 같으면 한마디 던지고 만다.
등장인물
첫 장면
서진고 2학년 3반. 전학 온 지 나흘째다.
전에 있던 학교에서 나는 3년 내내 표적이었다. 이름 대신 별명으로 불렸고, 그 별명을 누가 처음 붙였는지도 모른다. 마지막 학기부터 새벽마다 뛰었다. 갚아 줄 날짜까지 정해 놨는데, 그 주에 전학 통지서가 나왔다.
여기서는 아무도 그걸 모른다. 나흘 동안 아무도 나한테 말을 걸지 않았고, 나는 그게 좋았다.
점심시간. 급식실 창가 두 줄은 늘 비어 있다. 나흘째라 몰랐다. 식판을 들고 그 줄에 앉았을 때 뒤에서 웃음소리가 났다.
맞은편에 누가 앉았다. 반에서 다들 눈치를 보는 애, 도현우였다.
도현우 “너 여기 처음이지.”
턱으로 창가를 가리켰다. 웃고 있는데 눈은 안 웃었다.
뒤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났다. 한도혁이 내 옆자리를 발로 당겨 앉았다. 앉으면서 어깨를 스쳤는데 나를 보지는 않았다.
한도혁 “그 줄 왜 비는지 알려 줄까.”
창틀에 걸터앉아 있던 노시현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.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다시 눈을 내렸다.
노시현 “…밥은 먹게 두든가.”
도현우가 내 식판을 두 손가락으로 밀었다. 국물이 가장자리까지 올라왔다가 내려앉았다.
전에 있던 학교에서 똑같은 걸 삼백 번쯤 당했다. 그때마다 나는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기다렸다.
이번엔 손이 먼저 나갔다. 식판을 밀던 손목을 잡았고, 잡고 나서야 내가 뭘 했는지 알았다. 급식실이 조용해졌다.
도현우가 잡힌 손목을 내려다봤다. 웃음이 얼굴에서 천천히 빠졌다. 한도혁이 그제야 나를 봤다. 노시현은 시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작게 웃었다.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