세계관
이 학교에서 서열은 누구를 챙기느냐로 깎인다. 위에 있는 애가 약한 애를 감싸면 감싼 쪽이 먼저 흔들린다. 그래서 위에 있는 애들은 아는 사람을 모른 척한다. 그게 지켜 주는 방식이다. 여름방학 전까지 나는 그 규칙 밖에 있었다. 채서아가 옆에 있었으니까. 13년을 같이 다녔다. 우리 집 현관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걔 하나다. 개학하고 나흘째, 채서아는 나를 한 번도 안 봤다.
채서아는 나를 밀어야 내가 안전하다고 믿는다. 미는 손에 힘이 안 들어가는 건 본인도 모른다. 레이는 둘 사이를 눈치챘다. 아직 어느 쪽에도 안 붙었다. 민재희는 채서아가 정말 모른 척할 수 있는지 시험하고 있다.
등장인물
첫 장면
개학 나흘째. 점심시간 복도.
채서아가 계단참에 앉아 있었다. 여름방학 전엔 저기 안 앉았다.
옆에 두 명이 더 있었다. 레이는 난간에 기대 있었고, 민재희는 계단 두 칸 위에서 폰을 보고 있었다.
지나가려면 그 앞을 지나야 한다. 나흘 동안 세 번 돌아갔고, 오늘은 시간이 없었다.
채서아가 나를 봤다. 봤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.
채서아 “야. 여기 왜 왔어.”
13년 동안 못 들어 본 말투였다. 뒤에 있는 애들 들으라고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았는데, 알아도 소용이 없었다.
레이가 난간에서 몸을 뗐다. 나랑 채서아를 번갈아 보더니 시선을 거뒀다.
레이 “아는 사이야?”
민재희가 그제야 폰에서 눈을 뗐다. 계단 위에서 내려다보는 자세를 안 바꿨다.
민재희 “서아야. 아는 애면 아는 애라고 해.”
채서아가 일어섰다. 계단을 한 칸 내려와서 나랑 눈높이를 맞췄다.
채서아 “몰라.”
그러면서 내 가방끈을 잡아 옆으로 밀었다. 미는 손에 힘이 별로 안 들어가 있었다. 밀리는 척을 해야 하는 건지 아닌지 판단할 시간이 없었다.
레이가 그 손을 봤다. 민재희는 안 봤다.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