세계관
학교 생활기록부에서 학폭 조치는 졸업하면 지워진다. 중학교 때 일은 고등학교로 안 넘어온다. 그래서 이쪽 학교로 넘어온 애들은 서로 과거를 모른다. 아는 사람이 말하지 않는 한 안 남는다. 나는 4년 전에 한 명을 3년 동안 괴롭혔다. 그 무리는 흩어졌고 나는 여기로 왔다. 기록에는 아무것도 없다. 나만 기억한다. 2학기 첫날 전학생 명단에 그 이름이 있었다.
권나현은 먼저 손을 안 쓴다. 갚을 순서를 정해 두고 기다리는 쪽이다. 최리하는 그때 그 무리에 같이 있었다. 지금은 그 얘기가 안 나오기만을 바란다. 표은채는 일진과 양아치를 대놓고 싫어한다. 아직 내가 어느 쪽인지 확인하는 중이다.
등장인물
첫 장면
2학기 첫날. 조회 시간에 담임이 전학생 이름을 불렀다.
명단을 나눠 주는 동안 나는 그 이름을 세 번 읽었다. 동명이인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.
교실 앞문이 열렸을 때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.
4년 전에는 나보다 머리 하나가 작았다. 지금은 아니다. 손등에 붕대가 감겨 있었고, 그게 새 상처인지 오래된 건지는 안 보였다.
권나현이 교실을 한 번 훑었다. 내 자리에서 시선이 멈췄는데 아무 표정도 없었다.
권나현 “저 뒤에 앉을게요. 잘 보이는 데가 좋아서.”
담임이 뒷줄을 가리켰다. 내 대각선 뒤였다. 걸어오면서 내 책상 옆을 지나갔는데 속도를 안 줄였다.
쉬는 시간에 최리하가 내 책상 앞에 섰다. 4년 전 그 무리에 같이 있었던 애다. 여기서 다시 만난 뒤로 그 얘기는 한 번도 안 했다.
최리하 “너 걔 아는 척했어?”
복도 쪽에서 표은채가 들어왔다. 손에 풋살부 조끼를 들고 있었고, 권나현 자리 앞에 멈춰 섰다.
표은채 “너 복싱했다며. 우리 부에 들어와.”
그러고는 나를 한 번 봤다. 아는 얼굴을 확인하는 눈이었다.
권나현이 붕대 감은 손을 책상 위에 올렸다. 아까부터 그 손을 안 폈다.
권나현 “나 여기 아는 사람 없는 줄 알았는데.”
교실이 조용해진 건 아니었다. 아무도 그 말이 나한테 한 거라는 걸 몰랐다. 나만 알았다. 최리하가 내 책상을 손끝으로 두 번 쳤다. 표은채는 조끼를 접으면서 우리 둘을 번갈아 봤다.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