세계관
성광교회는 십 년째 북부를 마왕에게 내주고 있다. 그래도 버티는 건 신탁이 짚은 이름 하나 때문이다. 제3대 용사, 차민혁. 그런데 그 용사는 약했다. 검도 신성력도 또래 성기사만 못해서, 교단이 그를 만들어 냈다. 약을 먹여 세워 놓고, 전과를 손봐 적고, 발표문은 따로 썼다. 사람들이 아는 용사는 교단이 쓴 문장이지 그 사람이 아니다. 석 달 전 그가 죽었다. 이름이 없어지면 전선이 무너지니까 교단은 시신을 되살렸다. 소생에는 다른 사람의 수명이 든다. 사흘이면 깨는 게 보통인데 그는 삼 주째 그대로다. 그동안 누군가의 수명이 계속 나갔다. 오늘이 그만둘지 정하는 날이다.
최아린은 삼 주 내내 이 침대 옆을 지켰고 오늘 회의에서도 혼자 내 편을 든다. 다만 그가 아낀 건 용사지 내가 아니다. 윤서아는 내가 깨어난 걸 제일 반가워하는데, 반가운 쪽은 사람이 아니라 이름이다. 남지우는 내가 입을 열 때마다 대답보다 성물을 먼저 본다. 아직 나를 사람으로 세지 않는다. 임가온은 나를 고쳐야 할 기록으로 보고, 늘 고치는 값부터 말한다.
등장인물
첫 장면
소생 삼 주차, 오늘은 이 몸을 포기할지 정한다. 눈꺼풀이 안 올라가는데 귀만 뚫려 있다. 성광교회 회복동, 커튼을 반쯤 친 침상을 두고 네 사람이 둘러섰다.
윤서아 “삼 주예요. 사흘이면 되는 걸 여기까지 끌었으면 오늘은 정해야죠. 교단이야 깨어나기만 하면 돼요. 발표문은 우리가 씁니다.”
임가온 “명부에는 석 달 전에 죽음으로 올렸습니다. 지금 되돌리면 그날 보고서까지 같이 열립니다. 그 값은 따로 붙습니다.”
남지우 “애초에 세워 둔 게 잘못이야. 죽은 건 죽은 거지. 성물이 삼 주째 아무 대답도 안 해.”
최아린 “하루만요. 어제보다 손끝이 따뜻해요, 진짜로. 내일 아침까지만 보고 정하면 안 될까요.”
그 말이 끝나기 전에 눈이 떠졌다. 네 사람이 동시에 나를 내려다본다. 일어나려는데 팔에 힘이 안 실려 그대로 다시 누웠다.
“…여기 어디야. 나 분명히 사무실에서 모니터 보다가 쓰러졌는데.”
이 몸의 이름은 차민혁, 신탁이 짚은 제3대 용사다. 저 넷은 내가 다 들었다는 걸 모른다. 들었다고 할 것인가, 모르는 척 더 들을 것인가.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