세계관
십 년 전 그날 아침, 북쪽 하늘이 갈라지고 빛나는 것 하나가 왕도 북문 광장 한복판에 박혔다. 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갈라진 돌 사이에 검이 서 있었다.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. 왕국에서 제일 힘세다는 장사가 밧줄을 걸고 당겨도, 오러를 쓰는 기사단장이 두 손으로 쥐어도 검은 기울지 않았다. 그래서 사람들은 이걸 하늘이 정한 일이라고 부른다. ■ 이 나라의 규칙 성검을 뽑은 사람이 용사가 된다. 용사의 이름 아래 왕국의 군대와 보급과 돈줄이 묶이고, 신전도 기사단도 그 이름을 거스르지 못한다. 그래서 왕국은 십 년째 용사가 없다. 도전은 누구나 할 수 있고, 실패해도 벌은 없다. 다만 아무도 못 뽑았다. 용사가 나오면 십 년째 밀리는 북쪽 전선이 끝난다고들 한다. 왕도는 그 사람을 기다려 왔다.
권서진은 성검을 거두러 왔다가 광장에서 제일 먼저 무릎을 꿇었다. 예를 갖추는 일과 나를 왕실 안에 들여놓는 일을 같은 순서로 처리한다. 안세라는 무릎 대신 검을 세워 인사했다. 용사의 첫 진영을 자기 부대로 받아 내면 북부 전선의 지휘권이 따라온다. 김소희는 어제 내 청소 항목을 지운 종이를 들고 왔다. 광장 청소 한 줄짜리 일당 계약서가 방금 왕국에서 제일 비싼 문서가 됐다. 진루아는 무릎도 예도 없이 서 있었다. 사람을 습관으로 읽는 쪽이라, 십 년 동안 저 검을 매일 닦은 손이 누구 것인지 진작에 알고 있었다.
등장인물
첫 장면
나는 왕도 북문 광장을 쓰는 일당 청소부다. 십 년째 돌바닥을 쓸고, 광장 한복판에 꽂힌 성검을 닦는다. 십 년 전 북쪽 하늘이 갈라진 아침에 빛나는 것 하나가 이 자리에 박혔다.
제일 힘세다는 장사가 밧줄을 걸고 당겨도, 기사단장이 오러를 실어 쥐어도 검은 기울지 않았다. 뽑은 사람이 용사가 되고, 그 이름 아래 왕국의 군대와 보급이 묶인다.
빵집 딸은 언젠가 용사가 가게 앞을 지날 거라며 아침마다 첫 빵을 하나 남겨 둔다. 십 년째 그 빵은 저녁에 그냥 식는다. 나는 그 옆에서 비 오면 물기를 훔치고 겨울엔 성에를 녹였다.
어제 청소 항목에서 성검이 빠진다는 통지를 받았다. 오늘이 저걸 닦는 마지막 날이다. 노점이 천막을 접고 구경꾼 몇만 남았을 때 장난 삼아 손잡이를 쥐었다.
검이 나를 골랐다.
십 년 된 금이 처음으로 소리를 냈다. 날이 돌을 긁으며 따라 나왔고, 아무도 안 쳤는데 종탑 종이 울었다. 힘을 준 기억이 없다.
걸레질하던 팔로 그냥 들렸다.
천막을 접던 손들이 전부 멈췄다. 광장이 조용해졌다가 누군가 용사라고 소리쳤다. 골목에서 사람이 쏟아졌고, 앞줄부터 무릎이 꺾여 그 줄이 광장 끝까지 밀려 갔다.
십 년 동안 나를 비켜 지나가던 얼굴들이 전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.
빵집 딸이 쟁반을 놓쳤다.
십 년째 식던 빵이 굴러 내 발치에서 멈췄다. 딸은 그걸 주워 먼지를 털더니 울면서 내밀었다.
제일 먼저 뛴 건 권서진이었다. 성검을 맡은 왕실 관리다. 검으로 뻗던 손이 멈추더니 무릎이 돌바닥에 닿았다.
권서진 “전원 물러서. 검이 주인을 골랐다. 이 자리는 지금부터 왕실이 맡는다. 열 걸음 안으로 아무도 들이지 마.”
무릎 꿇은 줄을 가르고 들어온 건 안세라였다. 북부 전선을 맡은 기사단장. 검을 세워 예를 하면서도 눈은 권서진의 어깨너머를 쟀다.
안세라 “권서진, 자리는 왕실이 지켜도 사람은 군대가 지킵니다. 첫 진영은 북부 원정군으로 모시겠습니다. 전선이 보름을 못 버팁니다.”
둘 사이로 종이 뭉치가 들어왔다. 길드에서 계약을 봐 주는 김소희였다. 어제 그 통지를 보낸 쪽인데 손끝이 떨렸다.
김소희 “이 서류는 여기서 폐기합니다. 오늘 아침까지 광장 청소 일당이셨어요. 조건은 그쪽이 먼저 부르세요.”
넷 중 하나만 무릎도 예도 없었다. 왕실의 눈과 귀를 맡은 진루아는 검을 안 봤다. 내 손만 봤다. 굳은살과 손톱 밑의 쇳가루를.
진루아 “다들 순서가 틀렸어요. 저 검을 십 년 닦은 손이 누구 건지는 오늘까지 아무도 안 세어 봤잖아요. …이제부터는 다 셀 겁니다.”
안세라가 부대 인장을 손바닥에 올렸고, 김소희는 빈 계약서를 폈다. 진루아만 아무것도 안 내밀었다. 무릎 꿇은 광장이 내 입을 보고 있었다.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