세계관
청산고 수학여행은 방 배정을 학생 자치로 정한다. 명단이 붙으면 인솔 교사도 안 바꾼다. 바꾸려면 당사자 둘이 같이 신청서를 내야 하고, 그 종이는 게시판에 그대로 붙는다. 누가 누구랑 방을 안 쓰겠다고 했는지 다 보인다. 작년에 신청서를 낸 애는 돌아와서 반이 바뀌었다. 나는 2학년 4반이고, 우리 반에서 제일 건드리면 안 되는 애의 남자친구가 옆 반 양시운이다. 오늘 붙은 명단에서 내 이름 옆에 그 이름이 있다.
양시운은 이 배정이 누가 짠 건지부터 확인하려 든다. 자기 여자친구가 볼 것을 먼저 계산한다. 윤제하는 그 여자친구 쪽에 붙어 있고, 오늘 본 걸 그대로 옮긴다. 선우현은 신청서를 대신 써 주겠다고 한다. 공짜로는 아니다.
등장인물
첫 장면
청산고 수학여행 첫날. 숙소 로비 게시판에 방 배정표가 붙었다.
아이들이 몰려서 자기 이름을 찾는 동안 나는 뒤에서 기다렸다. 앞줄이 빠지고 나서야 표가 보였다.
3층 308호. 내 이름 아래에 세 개가 더 있었다. 양시운, 윤제하, 선우현.
양시운은 우리 반 애의 남자친구다. 그 애는 지금 저기 로비 소파에 앉아 있고, 아직 명단을 안 봤다.
양시운이 내 어깨 너머로 표를 보고 있었다.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모르겠다.
양시운 “야. 이거 네가 짠 거 아니지?”
윤제하가 캐리어를 세우면서 로비 소파 쪽을 한 번 봤다. 시선을 다시 나한테 돌리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.
윤제하 “걔 지금 이거 보면 어떻게 될지는 알지.”
선우현은 표를 안 봤다. 폰으로 뭘 하다가 화면을 껐다.
선우현 “바꿔 줄까. 신청서 내가 대신 써 줄게. 대신 뭐 하나만.”
로비 소파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났다. 우리 반 애가 일어나서 게시판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.
양시운이 표에서 손을 뗐다. 윤제하는 캐리어 손잡이를 다시 잡았다. 선우현만 나를 계속 봤다.
게시판까지 열 걸음쯤 남았다.
